C 포인터의 진실
소설가 : “그 여자가 사는 곳을 적어놓은 쪽지가 있었는데, 그걸 우리 학교 사물함 어딘가에 넣어 두었지. 사물함 번호를 알고 있는 자는 A라는 사람인데, 이 친구가 어디 사는 지는 나도 몰라. 하지만 내 오랜 지인 B가 알고 있지. 자, 여기 B의 주소를 알려줄테니 찾아가서 한번 물어보게.”
C 프로그래머 : “그 여자를 찾고 싶다고? 자, 여기 있네. ****her”
이 세상의 법칙
둘째 아이에게 그림형제 책을 읽어주면서 깜짝 놀랐다. ‘고양이와 쥐’라는 동화였는데 마지막에 폐부를 찌르는 한 마디…!

번역 농한기
작년 9월에 잠깐 번역을 쉬는 동안, 문득 내 영혼의 가벼움을 참을 수가 없어 세계문학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톨스토이 ‘안나 카레리나’를 시작으로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등등… 책 읽는 속도가 느린 내가 어느새 ‘문학 중년’이 되어 십대 시절 아예 안 읽어보거나 입시 때문에 바쁘다고 대충 건너뛴 책들을 밤마다 틈틈이 정독하고 있다.
그런데 역시 뭐랄까… 세상 ‘맛’을 조금 본 후에 읽는 문학 작품의 ‘맛’은 십대 시절의 ‘맛’과는 사뭇 다르다. 그래서 누가 그랬었나, 원래 세계문학은 중년에 읽어야 제맛이라고. 처음에는 어차피 노안이 와서 책 읽기도 힘든데, 내 전문 분야 도서 읽기도 바쁜데 무슨 소설책이냐 싶었는데… 지금은 세상을 떠나 고인이 되었지만 생전에 생각을 많이 한 사람들이 쓴 가상의 이야기 속에서 그들도 지금의 나와 같은 중년의 시기에 똑같이 이러저러한 고민을 했구나, 싶은 대목들이 여럿 등장하면서 매번 감탄을 연발하게 된다.
그리고 분야는 다르지만 나 역시 번역을 하는 사람으로서… 어렸을 적 문학전집은 일본어로 번역된 책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이른바 중역 도서가 대부분이었고, 그나마 무리하게 우리 정서(특히, 존댓말 어투, 남존여비 사상)에 맞추다 보니 어색한 문구들이 참 많았는데… 요즘은 그나마 각 언어 문학 전문가 선생님들이 신경쓰고 또 신경써서 매끄럽게 잘 번역하시는 것 같다. 그 장대한 분량의 고전을 번역하느라 밤을 지새우며 고민했을 번역자 분들께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