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초심으로

초심을 되새기고자 정말 오래 전에 취득한 Sun 자격증을 다시 꺼내보았다.
햐… 30대 초반에 나 진짜 열심히 살았구나! 노안이 걱정되긴 하지만 50대까지 그냥 죽 달려보자^^

아키텍트와 개발자

프로젝트 현장에서 아키텍트(architect)와 개발자(developer), 개발자와 프로그래머(programmer)가 하는 일을 혼동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나 어떤 직책이든 이들이 모두 엔지니어(engineer)라는 사실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사람마다 의견의 차이는 있겠지만… 프로그래머는 한정된 코드 레벨에서, 개발자는 코드와 코드 사이의 연계나 각종 솔루션, 미들웨어 레벨에서, 그리고 아키텍트는 전반적인 인프라와 다양한 기술 간의 상호관계 등을 감안해서 종합적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중요한 점은, 엔지니어는 ‘문제를 해결하는 전문가’라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고야 말겠다는 자세와 도전 정신, 그리고 학습 욕구가 없으면 이미 그는 엔지니어가 아니다. (그냥 일반인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솔직히 이런 점에서 나는 지금까지 엔지니어다운 아키텍트, 개발자, 프로그래머를 그리 많이 만나보지는 못했다. 갖가지 프로젝트 상황이나 여건, 이해관계자들이 분위기를 그렇게 만든 탓도 있겠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R&R을 내세우며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기 급급하거나 ‘누군가는 해결해주겠지’, ‘이 또한 지나가겠지’ 하는 생각으로 버티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아주 간단한 오류조차 구글링해볼 생각도 안하고 나에게 찾아와 디버깅 해달라고 칭얼대는 개발자도 참 많다. (로그 확인도 안 하고 무슨 디버깅을 하겠다는 건지…)

고객사 리더급들 중에서도 서버 IP/Port, 네트워크 방화벽, Web/WAS의 통신 구조 등 아주 기초적인 기술 지식도 없는 이들도 참 많은데, 일부 도메인 지식만 가진,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시스템을 구축하는 IT 프로젝트를 통솔하고 소속사와 고용 형태가 다양한 팀원들을 리드하겠다는 건지 정말 개탄스럽기만 하다.

눈물 나네

이런 글을 읽으면 몹시 마음이 아프다. 생각은 자유지만…
내가 8년 전 책을 번역하겠다고 뛰어든 것도 기존 역서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으니까…
인간의 역사 또한 늘 그런 식이었을까?
잘못된 걸 바로잡겠다고 나섰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가 도태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꼬박 10개월 동안 죽을 힘을 다해 번역했는데… 아직도 갈 길은 먼가 보다.
눈물 나네… ㅠㅠ

주경야역(晝耕夜譯)

readITzine 3호 기고문

주경야역(晝耕夜譯). 올 한 해도 즐거운 마음으로 쟁기 대신 랩탑과 마우스를 들고 밭 대신 프로젝트를 갈며 밤에는 열심히 번역하여 책 두 권을 썼다. 처음에는 심히 낯설기만 했던 이 이중 생활도 어느덧 7년, 처와 아이들에게 늘 미안했던 감정도 점점 무뎌지는 내 모습을 보니 이제는 어엿한(?) 과장급 역자가 된 듯하다. 그 동안 쓴 역서들을 포개어 쌓아보니 제법 높다랗다.

뭘 모르는 주변 사람들은 내가 무슨 대단한 능력이라도 갖고 있어 책 번역을 하는 줄 알지만, 나는 주로 대기업 SI 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지극히 평범한 40대 후반의 개발자다. 암흑의 쉘 화면에서 춤추는 서버 로그를 보며 이와 비슷한 톤의 다크 테마가 설정된 IDE에서 바지런히 자바 코드를 만지작거리는, 우리 큰 딸아이 말마따나 “대단히 따분한 일을 하는 듯이 보이는(물론, 일 자체는 따분하지 않은)” 일개 엔지니어다.

내가 번역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게 된 계기는 역설적으로 따분해 보이는 일을 하고 있는 내 영혼의 진부함을 달래려는 의도였지만, 코드를 만들어 내고 각종 서버를 세팅하는 일 외에도 내가 보람을 느낄 만한 일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유명 오픈 소스의 커미터가 되어 전 세계 수많은 개발자들에게 내가 만든 코드를 선보이고픈 욕심도 있었고, 또 나만의 경험과 노하우를 담아 스테디셀러가 될 만한 IT 도서를 집필하고 싶었다. 하지만 들쭉날쭉한 프로젝트 일정과 불규칙한 근무 강도, 그리고 마흔 이후 얻게 된 지병 때문에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금도 초심자 시절의 오래된 꿈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지만, 해외 유명 고수들이 쓴 원서를 국내 독자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역자로서 나는 큰 보람을 느낀다. 특히, 가끔씩 내 이름 석자가 등장하는 책을 읽고 개인 이메일이나 인터넷 서점 댓글로 몇몇 독자분들이 격려의 인삿말을 남겨주실 때 큰 힘을 얻는다. (발번역이라는 악평도 나를 더 분발하게 만드는 힘이 되니 나쁠 게 없다)

이제는 머리 구석구석 백발이 꽃피고 책을 오래 볼 수는 노안까지 찾아와 이 좋아하는 일을 내가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지 두려움이 앞서지만, 솔직히 나이는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그저 int 타입의 데이터일 뿐인 것 같다. 증가하는 걸 막을 도리는 없지만 그 하나의 멤버 변숫값이 내 인생 클래스를 좌우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내 주변을 보면 젊음을 늙게 사는 사람들이 있고, 늙음을 젊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좋아하는 일을 그만둘 이유가 없다.

이미 옛 성현들이 너무나 많이 말씀하신 까닭에 식상하고 진부한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변화를 감수하고 도전하지 않으면 정말 아무 것도 얻을 수가 없다. 내 경우만 하더라도 그렇다. 하루하루 매시각 어디로 불똥이 튈지 모를 SI 개발 프로젝트의 카오스성(chaosity)에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살아가는 내가 과연 이 일을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또 해낼 수 있을까, 처음에는 숱한 고민을 했지만 그냥 밀어붙여 해보니 다 길이 열리고… 적어도 내 아이들에게 물려줄 소박한 유산 정도는 마련된 것 같아, 그리고 드물게는 나를 알아보고 역서에 사인을 해달라는 사람도 있어 뿌듯함을 느낀다.

굳이 책을 집필하거나 번역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 중에도 늘 마음 속에 품고는 살지만 막상 실천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 이런 분들에게 나는 간단히 영어 세 단어를 조언하고 싶다. “Just do it!” 다음 생애 같은 건 없고 지금 하지 않으면 영영 묻혀버린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며 실로 이 세상에 시작하기에 늦은 일 따위는 없다. 하고 싶은 일은 하고 살아야 나중에 후회가 없지 않겠는가!

다가오는 2022년은 나를 포함해 이 땅의 모든 개발자 여러분들이 새로운 목표를 향해 첫삽을 뜨게 된, 의미있는 멋진 한 해로 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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