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이름: architeer

AI가 들려준 옛날 이야기

옛날 옛적, 사방이 아름다운 마법으로 가득 찬 ‘코드라 왕국’이 있었어.

이 왕국에서는 요리도, 청소도, 심지어 밤하늘에 별을 띄우는 일도 모두 요정들이 주문(Code)을 외워서 처리했단다. 왕국의 마법사들은 마을 사람들의 요청을 들어주느라 매일 밤을 새우며 주문을 새로 적고 고치느라 바빴지.

“아빠, 주문에 오타 하나만 나면 어떻게 돼?”
“그럼 요리가 탄 탄지지가 되거나, 별 대신 사과가 밤하늘에서 떨어진단다!”

왕국 제일의 천재 마법사 ‘아키’는 매일 복잡하게 얽히는 마법 주문들 때문에 머리가 아팠어. 마법사들이 저마다 자기 방식대로 주문을 고쳐놓는 바람에, 어제까지 잘 돌아가던 마법이 오늘은 작동하지 않는 일이 태반이었거든.

고민하던 아키는 왕국 제일 깊은 곳에 있는 ‘시간의 도서관’으로 찾아갔어. 그리고 마법사들을 모두 불러 모아 특별한 규칙을 만들었지.

“앞으로 모든 마법 주문은 이 양피지에 기록하고, 수정할 때마다 ‘마법 스탬프’를 찍는다!”

이 스탬프에는 아주 특별한 힘이 있었어.

  • 스탬프를 찍으면 그 순간의 마법 상태가 완벽하게 저장되었고,
  • 만약 새로 고친 마법에 오작동(Bug)이 생기면 스탬프를 찍었던 옛날의 완벽했던 순간으로 시간을 돌릴 수(Rollback) 있었지.

마법사들은 신이 났어! 실수로 마법을 엉망으로 만들어도 스탬프 덕분에 언제든 원래대로 돌릴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왕국 근처 산에서 잠자던 ‘분홍 불꽃 용’이 깨어났어! 용은 재채기를 할 때마다 알록달록한 불꽃을 내뿜었는데, 그 바람에 왕국의 마법 시스템에 큰 소동이 일어났단다.

마을 사람들은 소리쳤어. “용의 불꽃을 막을 ‘방화벽 마법’을 만들어주세요!”

마법사 두 명이 급히 작업에 들어갔지.

  • 마법사 A는 마을 외벽에 방화벽을 치는 마법을 만들고 있었어.
  • 마법사 B는 용의 불꽃을 시원한 사이다로 바꾸는 마법을 만들고 있었지.

그런데 두 마법사가 서로 이야기하지 않고 동시에 마법 주문을 합치려 하자, 마법이 엄청나게 꼬여버린 거야! (충돌, Merge Conflict!)

마을 외벽에서 시원한 사이다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오고, 밤하늘에서는 톡톡 튀는 탄산 방울이 쏟아졌어. 마을은 순식간에 끈적끈적한 사이다 바다가 될 위기에 처했지!

마을 사람들이 발을 동둥 굴릴 때, 아키는 당황하지 않고 품속에서 반짝이는 스탬프 주머니를 꺼냈어.

“모두 당황하지 마라! 사이다 바다가 되기 전, 우리가 찍어둔 ‘버전 1.0(v1.0)’ 스탬프의 주문을 불러온다!”

아키가 양피지에 스탬프를 쿵! 찍자, 주문이 거꾸로 재생되면서 사이다 폭발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마을은 다시 평화롭고 깨끗했던 모습으로 돌아왔단다.

그리고 아키는 두 마법사를 앉혀놓고 말했어. “마법을 합칠 때에는 반드시 서로의 마법이 간섭하지 않는지 차근차근 검토(Code Review)하고 합쳐야 하는 법이야.”

아키와 마법사들은 머리를 맞대고 아주 깔끔하고 정교한 주문을 새로 만들었어.

이번에는 용을 물리치는 대신, 용이 재채기를 할 때마다 달콤한 사이다가 잔에 쏙 담겨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지도록 마법을 설계했지. 용도 사람들과 친해져서 왕국의 인플루언서가 되었단다.

그 후 코드라 왕국에서는 아무리 복잡한 마법을 만들어도, 차근차근 기록하고 잘 정리하는 ‘아키의 법칙’ 덕분에 단 한 번도 마법이 꼬이는 일이 없었단다.

내게 힘이 되는 글

나이가 들면서
눈이 침침한 것은
필요 없는 작은 것은 보지 말고
필요한 큰 것만 보라는 것이며

귀가 잘 안 들리는 것은,
필요 없는 작은 말은 듣지 말고,
필요한 큰 말만 들으라는 것이고

이가 시린 것은,
연한 음식만 먹고 소화불량 없게 하려 함이고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운 것은,
매사에 조심하고 멀리 가지 말라는 것이지요.

머리가 하얗게 되는 것은,
멀리 있어도 나이 든 사람인 것을 알아보게 하기 위한 조물주의 배려랍니다.

정신이 깜박거리는 것은,
살아온 세월을 다 기억하지 말라는 것이니

지나온 세월을 다 기억하면 아마도 머리가 핑 할 터이니
좋은 기억, 아름다운 추억만 기억할 터이고,

바람처럼 다가오는 시간을
선물처럼 받아들여,
가끔 힘들면 한숨 한 번 쉬고 하늘을 볼 것이라
멈추면 보이는 것이 참 많소이다.

정약용 ‘목민심서(牧民心書)’ 중에서

나는 30대 중반부터 예기치 않은 병에 걸렸고 40대부터는 정기적으로 병원을 오가는 신세가 되었다. 생로병사(生老病死)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막상 늙어 병이 드는 ‘로병(老病)’의 단계를 경험하면 비로소 ‘사(死)’에 대해 생각이 깊어지게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위에 인용한 ‘목민심서’의 한 대목을 떠올린다.

얼마나 멋있는 글인가! 하나뿐인 내 육체가 점점 망가지고 고장나고 있지만, 내게 주어진 남은 시간을 선물처럼 받아들여 긍정적으로 살아가라는 다산의 말씀은 늘 내게 큰 힘이 된다.

다른 것은 필수다

아직도 ‘다르다(not the same)’와 ‘틀리다(wrong, not right)’라는 말이 왜 다.른.지.를 모르고 아무렇게나 쓰는 한국인들이 참 많다. 뉴스 방송에서 인터뷰 하는 이들 중에도 그런 경우가 많은데, 요즘은 자막에 ‘틀리다’를 ‘다르다’로 정정하는 추세라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는 단순한 실수라기보다 한국인 정서 깊은 곳에 내재된 ‘튀면(다르면) 안 된다(틀리다)’는 관념 때문에 언어에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아마 나와 비슷한 연식의 사람들은 사실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시절부터 암묵적으로 그런 가르침을 받아왔고 집에서도 부모님께 그런 식으로 교육을 받았다. ‘가만히만 있으면 중간은 간다’, ‘눈치껏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해라’ 하는 식으로. 그래서 무의식 중에 같은 맥락에서 ‘다르다’와 ‘틀리다’를 동일한 개념으로 표현하는 것 같다. 즉, 남들과 다른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변했다. 지금은 외려 ‘다른 것’이 ‘옳은 것’에 더 가까운 시대다. 튀어야 살 수 있다. 남들과 똑같아선 생존하기 어렵다! 당장 AI가 수많은 일자리를 대체하기 시작하는 무렵에 당신 자신을 AI와 차별화하지 못하면, 즉 당신은 할 수 있지만 AI는 할 수 없는 ‘특별한 무언가’를 어필하지 못하면 부를 거머쥔 기업가는 굳이 당신에게 월급을 줄 이유가 없다. 초중고 12년 내내 문제 맞추기에 몰두한 끝에 우수한 성적으로 명문대에 입학한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간판만 있으면 편하게 먹고 살던 시대는 앞으로 두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럼, 도대체 나를 어떻게 ‘다르게’ 만들 것인가? 이 고민은 죽을 때까지 짊어지고 가야 할 평생의 숙제가 될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마치 극단적인 AI 예찬론자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AI를 어떻게 생각하든지 상관없이 세상은 이미 극단적인 효율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다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상황에 맞게 정신 바짝 차리고 남들과 ‘다른’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면 그저그런 인생을 살다 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단상(斷想)

“네가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너는 10대 시절로 돌아가겠느냐, 아니면 군대 시절로 가겠느냐?”
내 사후에 만약 염라대왕(?)을 만나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0.01초도 망설이지 않고 군대 시절이라고 답할 것이다.


요즘 ‘참교육’이라는 넷플릭스 드라마가 비영어권 48개국에서 시청률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처음 몇 회를 보다가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10대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드라마에 각색된 것처럼 드라마틱한 사연은 없었다. 나는 진따도, 왕따도 아니었지만 결코 강한 자의 편에 속해 있지 않은, 지극히 조용하고 평범한 학생이었다.

내가 살던 서울시 은평구는 도심에 비하면 쾌적한 동네였지만, 학교에 온갖 불량한 학생들이 들끓던 우범 지대이기도 했다. (나 역시 길거리에서 서너 번 정도는 패거리들에게 돈을 뜯겼던 기억이 난다) 특히, 중학교가 아주 불량했는데 당시 젊은 여교사들이 거의 반마다 한 명씩 있는 소위 ‘대빵’이 큰 소리를 치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1980년 후반에서 1990년 초반, 사실 이 시기는 은평구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적으로 폭력이 일상화된 시대였다. 교사가 깡패처럼 학생들을 쥐어패도 ‘사랑의 매’라고 용인되었고, 학생들 사이에서 강자가 약자를 괴롭혀도 ‘친구들끼리 장난친 것’이었다. 아무도, 어떤 어른들도 폭력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았다.

결코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지만 굳이 회상컨대, ‘말죽거리 잔혹사’라는 영화에 나오는 분위기와 상당히 비슷했던 것 같다. 대체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폭력인지도 모른 채, 아니 그런 것을 따지고 생각하지도 않은 채 그저 약자는 강자의 폭력을 감내해야만 했다. 학교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폭력을 휘두르는 학생이 무용담을 늘어놓는 모습과 정권을 잡아 반대 세력을 숙청하는 정치인들과의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그냥 내가 태어난 세상은 원래 이렇게 생겼다 보다, 하며 하루하루 정신적 고통을 침묵으로 참아냈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달라졌을까? 글쎄다… 대놓고 당당하게 하지 않을 뿐이지, 지금 이 시간 어느 학교에서도 끊임없이 폭력은 행사되고 있을 것이다. 오히려 전보다 더 교활하고, 지능적이고, 악랄하게, IT 수단과 결합해서,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가, 심지어 적발돼도 막아 줄 든든한 사람을 깔아둔 채 훨씬 더 가혹하고 잔인하게 인간성을 짓밟는 폭력이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다. 오죽하면 교육부 장관이 직접 교권을 보호하려고 없던 조직을 운영한다는, 현실에선 도저히 있음 직하지 않은 ‘참교육’ 같은 드라마가 나오자마자 1위를 찍었을까.


박경리 선생의 ‘토지’를 읽어보면 20권에 걸쳐 ‘강약(强弱)은 부동(不同)’이란 말이 자주 등장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세상을 가졌을 때 이를 잘 지키려면 때로는 배신도 해야 하고 잔인하고, 냉혹해져야 하며 때로는 인간성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다고 한다. 정말 그런 것 같다.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인간이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존재인 것이다. 대충 살면 죽는다. 강자의 먹잇감으로 전락해 불행해지지 않으려면 숨이 끊어질 때까지 매 순간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한다.

내 이름

내 이름 이일웅에는 ‘ㅇ’이 4개나 들어있고 모두 모음으로 이루어져 있어 발음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매우 특이하게도 일웅의 웅이 ‘곰 웅(熊)’자다. 이름에 ‘웅’자가 들어간 사람 중 99%는 ‘수컷 웅(雄)’자라고 하는데, 나는 그 1%의 예외에 속하는 셈이다.

어렸을 때부터 이.일.웅.이라고 아무리 또박또박 발음해도 ‘이이룽’에 가깝게 들리는 것은 자음동화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지금까지 내 이름을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이일용’으로 적은 사람이 족히 수백 명은 될 것 같다. 이 아재 캐릭터가 너무 유명한 탓이겠지만…


자신의 이름을 구글에서 검색해본 적 있는가? 나의 경우에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동명이인 배우님이 워낙 유명하신 분이라 나는 도저히 끼어들 자리가 없다.


초등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 그러니까 1982년 3월, 여자 담임 선생님이 출석을 부르시는데, ‘이일태’라고 부르셔서 대답이 없으니까 주변에서 어머니가 ‘일웅’이라고 정정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한자를 배우고 나니 ‘태(態)’자와 ‘웅(熊)’자가 비슷하게 생겨서 헷갈리신 것이었다. 그렇다, 곰은 ‘마음’이 아닌 ‘네 발’ 달린 동물이 맞다!

어쨌거나, 아버지가 특이한 한자(熊)로 이름을 지어주신 덕분에, 중학교 3년 내내 내 별명은 ‘곰’이었다. 지금은 내 작은 딸이 ‘선베어(sun bear)’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고보니 일광욕을 즐기는 북극곰이 등장하는 코카콜라 광고 한 장면이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다^^

요즘은 예전과 달리 이름을 바꾸는 절차가 많이 간편해졌다고 하지만…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이니 무덤까지 갖고 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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