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이름: architeer

투표사무원 후기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처와 함께 투표사무원으로 근무했다.

장소는 집에서 차로 10분 정도 걸리는 다른 동네 중학교였다. 새벽 5시까지 가느라 4시부터 일어나 부산을 떨었고, 도착해보니 투표관리관 한 분과 다른 공무원 투표사무원 분들이 열심히 바닥에 청테이프를 붙이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4시 반쯤 도착했는데, 그로부터 한 시간 정도 지나 14명 사무원이 다 합류하자 선서를 한 후 유권자들을 받을 준비를 시작했다. 밖에는 그 이른 시간부터 투표를 하기 위해 줄을 서는 주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투표사무원 업무는 신분 확인하는 사람 4명, 투표용지를 나눠주는 사람 4명, 투표함 2개 뒤에 앉아 있는 2명, 안내원 4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나는 투표사무원 경험이 없다고 안내원을 시켰는데, 관리관이 그냥 적당히 서로 바꿔가며 하라는 약간 무책임한 말을 하여 처음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왜냐하면 앉아서 일하는 사람이 서서 일하는 사람과 흔쾌히 역할을 바꿔줄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공무원들 특유의 ‘신경쓰기 싫어하는’ 나쁜 버릇은 아직이구나, 싶었다. 12시간 남짓 일해야 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생각하면 적어도 업무 교대는 선거일 하루를 책임지는 자신들이 관장해야 마땅하지 않나.

다행히, 사무원들 개개인이 그리 몰상식한 사람은 없어서 그럭저럭 서로 자리를 바꿔가면서 즐겁게(?) 일했다. 우리 투표소만 약 1,600명 주민들이 방문했는데, 장시간 서서 안내하느라 때로 무릎이 시큰거리고 시간이 멈춘 듯했지만 버틸 만했다. 쉬는 시간이 따로 없어서 그때그때 서로 위치를 교대하며 화장실도 다녀오고 잠깐 밖에서 쉬기도 했다. 점심은 한솥도시락을 사갖고 와 처와 함께 차 안에서 허겁지겁 먹었는데, 일당에 식비는 별도라 불만은 없었지만 자리를 비우기 어려운 상황이니 식사를 각자 해결하라고 하는 것보다 단체로 김밥 + 음료수를 주문해서 나눠주는 게 더 낫지 않나 싶다.

이러구러 무사히 오후 6시가 되었고, 마지막 투표한 아줌마 한 분이 나가자 출입문을 봉쇄했다. 그리고 관리관이 투표 종료를 선언 후 참관인들과 함께 투표함 봉인을 하고 있는 동안, 14명의 사무원들이 일사분란하게 뒷정리를 마치니 6시 15분 정도 되었다. 모두 웃는 표정으로 다음 투표를 기약하며 굿바이했다.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이었지만 단순히 일용직 알바를 했다는 생각보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를 위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뭔가 했다는 사실에 뿌듯했다.

참 잘도 돌아다녔네

30대에 갓 접어들 무렵, 겁도 없이 혼자서 도요타 코롤라 한 대를 끌고 미국 본토를 여기저기 쑤시고 다녔던 경험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인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잘 한 일 중 하나로 기억된다.

4,000마일이 넘는 이 장대한 여정은 2년 동안 여러 차례 나누어 진행했는데, 당시 내가 머물렀던 조지아 주 애틀랜타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1. 서부 여행(녹색) : 밴쿠버(캐나다) ~ 시애틀 ~ 포틀랜드 ~ 몬터레이 ~ 샌프란시스코 ~ 로스앤젤레스 ~ 샌디에고
  2. 동부 여행(보라색) : 보스턴 ~ 필라델피아 ~ 뉴욕 ~ 워싱턴 D.C ~ 리치몬드
  3. 횡단 여행(빨간색) : 뉴올리언스 ~ 샌안토니오 ~ 라스베이거스 ~ 솔트레이크시티 ~ 덴버 ~ 캔자스시티 ~ 세인트루이스 ~ 메인 ~ 버지니아 주
  4. 플로리다 여행(풀색) : 올랜도 ~ 마이애미 ~ 키웨스트
  5. 기타 : 시카고, 하와이, 서배너, 찰스턴, 테네시, 토론토(캐나다), 댈러스

이 정도면 내 발길이 닿지 않은 알래스카, 괌 등지를 제외한 웬만한 미국 주요 도시들은 다 가본 셈이고, 아마 대부분의 미국인들보다도 미국 본토를 더 돌아다녔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특히, U.S. Route 101을 따라 주구장창 남으로 달리면서 끝도 없이 펼쳐진 드넓은 태평양 거친 파도를 바라볼 때의 감격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가슴에 벅차오른다.

하루 5 ~ 10시간 운전하며 싸구려 모텔에서 쓰러지듯 기절하고… 하하, 돌이켜보면 나에게도 젊은 시절이 있었구나, 싶다. 누군가 지금 나에게 같은 짓을 하라고 한다면, 설령 비용을 다 대주겠다고 해도 도저히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군대 추억

대한민국 남자로 태어나 군대 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너무나 진부한 얘기임에도 남자들끼리 모이면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이야기 보따리^^

나는 공군 사관후보생 100기로 임관하여 40개월 동안 복무했다. 내 나이 24, 25, 26, 27살… 꽃다운(?) 시절의 40개월을 공군에 몸담았다.

2001년 7월에 전역한 후 별로 꺼내볼 일이 없어 묻어두었던 사진이 몇 장 발견되어 모처럼 오래 전 추억에 빠져본다.


진주 훈련소 시절이다. 무더운 남쪽에서 16주 동안 고된 훈련을 받았다. 특기 교육까지 합하면 반년 동안을 진주에서 살았다.


드디어 공군 소위로 임관하고 부모님을 뵙던 날! 계급장을 달아주시던 아버지의 흐뭇한 미소가 아직도 생각난다.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힘들었던 기억도 지나고 나면 흐뭇한 추억이 된다.
나보다 늦게 입대해 행정계에서 신병 대기하다 먼저 제대한 친구들도 지금쯤 어딘가에서 다 중요한 사람들이 되어 있겠지? ^^


열악한 BOQ 비좁은 숙소에서 함께 동고동락하며 의리없게(?) 먼저 전역한 선배 장교들, 어리버리한 초급 장교에게 따뜻하고 살값게 대해주셨던 삼촌뻘 부사관 아재들도 은퇴 후 건강히 잘 계신지…

당시엔 너무너무 더디게 흘러가던 시간들이 지금 와서 돌아보니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태어난 곳이 휴전 상태인 국가라 어쩔 수 없이 다른 남자들처럼 나도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바쳐야 했지만, 대한민국 공군 장교로 복무했다는 사실은 지금도 나에겐 큰 영광이자 자랑이다. 필승!

50대라는 나이

50이란 나이를 넘기니 묘한 느낌이다. 지천명(知天命), 즉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라고 하는데, 하늘의 뜻은커녕 내가 누구인지, 나의 뜻은 무엇인지도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나도 50살 정도 되면 그래도 뭔가가 되어 있겠지.’ 20대, 30대 시절에는 나도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느지막이 40대 중반 즈음에 모종의 깨달음을 얻어, 오래전에 세상을 살다 간 대문호의 고전을 챙겨 읽고 거의 매일 인생과 죽음에 대해 사색했다. 그 결과 천명을 알게 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조금은 짐작이 간다. 그것은 내가 어떤 대단한 존재라서 하늘의 명을 받들어 산다는 게 아니라, 내 인생이라는 하나뿐인 찰나의 시간에 어떤 의미를 남길지 스스로 깨닫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려면 결국 나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분명히 인식하고, 그 안에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다 가는 것이 최선일지 머릿속으로 구상을 마쳐야 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다시 ‘죽음’이라는, 언젠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최후의 이벤트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성찰로 귀결된다.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진 100년 미만의 시간은 사실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일진대, 이 세상에서 내가 사라져 없어진다면 과연 지금 나의 존재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기적으로 악착같이 살다가도 죽음 앞에서는 마음이 겸손해진다. 평균 수명이 아무리 늘어난다고 하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은 절반도 채 남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반세기 동안 해왔던 대로 그저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할 것인가, 아니면 끝을 맞이하기 전에 일말의 후회도 없도록 전혀 새로운 인생을 기획할 것인가? 50대는 그래서 겸손하면서도 고민이 많고, 동시에 가슴이 뛰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고쳐야 할 말 습관

일반적으로 엔지니어들이 타 직업군에 속한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표현에 서툴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하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업계에 오랫동안 종사하면서 사람들이 말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건대, 말하는 습관을 잘못 들여 불필요하게 신뢰(특히, 고객사 직원들의 신뢰)를 잃는 경우를 많이 봐 왔다. 늦은 시간까지 고생해가며 전문가로서 역량을 쏟아부어 작업한 결과물에 대해 주간보고 같은 회의 시간에 이야기하는데, 순전히 본인의 잘못 길들여진 말습관 때문에 듣는 사람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이다.

몇 가지 전형적인 예시를 들겠다. 여러분 자신이 여기에 해당한다면 진지하게 고민해볼 것을 권장한다. 내가 어떤 습관으로 말하는지 알아야 고칠 수 있을 것이다.

  1. ‘이제’ 타령
    준비된 원고를 읽는 게 아닌 다음에야 말과 말 사이를 로봇처럼 끊김없이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음’, ‘이제’, ‘그래서’, ‘좀’, ‘뭐랄까’, ‘약간’, ‘그 뭐냐’, ‘일단은’ 이런 말들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듣기가 싫어진다. 나도 가끔 부지불식 중에 섞어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의식적으로 그 횟수를 줄이려고 노력한다.

  2. ‘~라고 보시면 됩니다’
    영어의 ‘can be thought of as’를 번역한 듯한 이런 말은 공무원들이 애용하는 어투다. ‘보시면 된다’, ‘볼 수 있다’는 말 자체는 문법적으로 문제가 없지만, 이런 식으로 문장이 계속 종결되면 ‘그렇게 보든 말든 그건 당신 마음이고 설사 그게 아니더라도 나는 모르겠다’는 무책임한 뉘앙스를 풍긴다. 특히, 시스템 아키텍처나 개발 프레임워크를 설명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면 확신이 부족한 것처럼 들린다.

  3. 문장이 한없이 이어진다
    어떤 말을 시작하면 ‘~는데, ~는데…’, ‘~하고요, ~도 있고요, 그런데…’, ‘~이고 그래서 ~이고 그래서’ 식으로 문장이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사람들이 많다. 결국 듣는 사람은 저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되고 지레 지친다.

  4. ‘부분’, ‘측면’
    ‘부분’은 내가 정말 싫어하는 애매모호한 단어다. TV에서 고위급 공직자(예: 대통령실 대변인, 장관 등)들이 기자 회견을 하는 모습을 잘 보면 이 ‘부분’이라는 단어가 상당히 자주 쓰인다. 이 또한 일종의 책임 회피를 위한 연막탄인데, 객관적인 사실과 데이터에 근거하여 말하는 엔지니어가 이런 흐리멍덩한 말을 쓸 이유가 없다.

  5. 지나친 추임새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있음을 알려주려는 추임새(‘아, 네’, ‘그렇죠’, ‘맞습니다’ 등)도 지나치면 외려 상대에게 그만 말하라는 위압감을 줄 수 있다.

이제 IT 업계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 분들이라면 이 정도만 조심해도 다른 사람들과 꽤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할 것이다. 아주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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