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다르다(not the same)’와 ‘틀리다(wrong, not right)’라는 말이 왜 다.른.지.를 모르고 아무렇게나 쓰는 한국인들이 참 많다. 뉴스 방송에서 인터뷰 하는 이들 중에도 그런 경우가 많은데, 요즘은 자막에 ‘틀리다’를 ‘다르다’로 정정하는 추세라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는 단순한 실수라기보다 한국인 정서 깊은 곳에 내재된 ‘튀면(다르면) 안 된다(틀리다)’는 관념 때문에 언어에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아마 나와 비슷한 연식의 사람들은 사실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시절부터 암묵적으로 그런 가르침을 받아왔고 집에서도 부모님께 그런 식으로 교육을 받았다. ‘가만히만 있으면 중간은 간다’, ‘눈치껏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해라’ 하는 식으로. 그래서 무의식 중에 같은 맥락에서 ‘다르다’와 ‘틀리다’를 동일한 개념으로 표현하는 것 같다. 즉, 남들과 다른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변했다. 지금은 외려 ‘다른 것’이 ‘옳은 것’에 더 가까운 시대다. 튀어야 살 수 있다. 남들과 똑같아선 생존하기 어렵다! 당장 AI가 수많은 일자리를 대체하기 시작하는 무렵에 당신 자신을 AI와 차별화하지 못하면, 즉 당신은 할 수 있지만 AI는 할 수 없는 ‘특별한 무언가’를 어필하지 못하면 부를 거머쥔 기업가는 굳이 당신에게 월급을 줄 이유가 없다. 초중고 12년 내내 문제 맞추기에 몰두한 끝에 우수한 성적으로 명문대에 입학한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간판만 있으면 편하게 먹고 살던 시대는 앞으로 두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럼, 도대체 나를 어떻게 ‘다르게’ 만들 것인가? 이 고민은 죽을 때까지 짊어지고 가야 할 평생의 숙제가 될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마치 극단적인 AI 예찬론자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AI를 어떻게 생각하든지 상관없이 세상은 이미 극단적인 효율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다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상황에 맞게 정신 바짝 차리고 남들과 ‘다른’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면 그저그런 인생을 살다 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