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斷想)

“네가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너는 10대 시절로 돌아가겠느냐, 아니면 군대 시절로 가겠느냐?”
내 사후에 만약 염라대왕(?)을 만나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0.01초도 망설이지 않고 군대 시절이라고 답할 것이다.


요즘 ‘참교육’이라는 넷플릭스 드라마가 비영어권 48개국에서 시청률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처음 몇 회를 보다가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10대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드라마에 각색된 것처럼 드라마틱한 사연은 없었다. 나는 진따도, 왕따도 아니었지만 결코 강한 자의 편에 속해 있지 않은, 지극히 조용하고 평범한 학생이었다.

내가 살던 서울시 은평구는 도심에 비하면 쾌적한 동네였지만, 학교에 온갖 불량한 학생들이 들끓던 우범 지대이기도 했다. (나 역시 길거리에서 서너 번 정도는 패거리들에게 돈을 뜯겼던 기억이 난다) 특히, 중학교가 아주 불량했는데 당시 젊은 여교사들이 거의 반마다 한 명씩 있는 소위 ‘대빵’이 큰 소리를 치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1980년 후반에서 1990년 초반, 사실 이 시기는 은평구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적으로 폭력이 일상화된 시대였다. 교사가 깡패처럼 학생들을 쥐어패도 ‘사랑의 매’라고 용인되었고, 학생들 사이에서 강자가 약자를 괴롭혀도 ‘친구들끼리 장난친 것’이었다. 아무도, 어떤 어른들도 폭력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았다.

결코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지만 굳이 회상컨대, ‘말죽거리 잔혹사’라는 영화에 나오는 분위기와 상당히 비슷했던 것 같다. 대체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폭력인지도 모른 채, 아니 그런 것을 따지고 생각하지도 않은 채 그저 약자는 강자의 폭력을 감내해야만 했다. 학교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폭력을 휘두르는 학생이 무용담을 늘어놓는 모습과 정권을 잡아 반대 세력을 숙청하는 정치인들과의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그냥 내가 태어난 세상은 원래 이렇게 생겼다 보다, 하며 하루하루 정신적 고통을 침묵으로 참아냈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달라졌을까? 글쎄다… 대놓고 당당하게 하지 않을 뿐이지, 지금 이 시간 어느 학교에서도 끊임없이 폭력은 행사되고 있을 것이다. 오히려 전보다 더 교활하고, 지능적이고, 악랄하게, IT 수단과 결합해서,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가, 심지어 적발돼도 막아 줄 든든한 사람을 깔아둔 채 훨씬 더 가혹하고 잔인하게 인간성을 짓밟는 폭력이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다. 오죽하면 교육부 장관이 직접 교권을 보호하려고 없던 조직을 운영한다는, 현실에선 도저히 있음 직하지 않은 ‘참교육’ 같은 드라마가 나오자마자 1위를 찍었을까.


박경리 선생의 ‘토지’를 읽어보면 20권에 걸쳐 ‘강약(强弱)은 부동(不同)’이란 말이 자주 등장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세상을 가졌을 때 이를 잘 지키려면 때로는 배신도 해야 하고 잔인하고, 냉혹해져야 하며 때로는 인간성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다고 한다. 정말 그런 것 같다.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인간이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존재인 것이다. 대충 살면 죽는다. 강자의 먹잇감으로 전락해 불행해지지 않으려면 숨이 끊어질 때까지 매 순간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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